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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우리소리박물관 국내 첫 민요 전문 박물관,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 창덕궁 돈화문 맞은편에 문을 열었다. ‘민요의 땅’ 한반도의 139개 시·군 904개 마을 곳곳을 찾아, 2만여 명을 만나 담아낸 전국의 소리를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은 지상1층~지하2층 총 3개층 연면적 1,385㎡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상설전시실을 비롯하여 음원감상실, 영상실, 우리소리 아카이브 등 다양한 공간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은 민요를 처음 접하는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에게 민요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는 공간으로,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전국 팔도의 대표민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는 ‘우리소리로 살다’란 주제를 다시 ‘일과 우리소리’, ‘놀이와 우리소리’, ‘..
삼성동 코엑스 앞의 조형물들 해상왕 장보고 기념물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기념물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봉은사 봉은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에 속한다. 이 절의 기원은 794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한 견성사이다. 그뒤 1498년에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인 선릉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중건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중수했다.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화재로 주요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웅전·판전·명부전·법왕루·심검당·북극전 등이 남아 있다. 중..
G밸리 산업박물관 G밸리는 1960~80년대 전자·섬유공장이 '수출 한국'을 이끌던 구로·금천구 일대를 가리킨다. 과거 수출산업단지였던 이 동네는 2000년 12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뀌었고 현재는 G밸리로 불린다. 1960년대 구로공단부터 21세기 G밸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넘는 구로공단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산업박물관이다. 과거 수출용 인형과 가발, 전화기와 텔레비전을 생산하던 공장의 흔적은 사라지고 IT관련 기업 집약지로 변모한 이곳에서 옛 구로공단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앞 광장 인공연못에는 로봇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박물관 내부 전시물들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구로공단에서 일을 했던 여공들이 기거했던 쪽방을 재현한 뒤, 관람객으로 하여금 당시 여공들의 퇴근 후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순이의 만화공작소, 추억의 종이뽑기, 역사 및 직업체험, 여공생활체험, 추억의 도시락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구로공단 수출산업의 획기적인 발전과 국제수지 향상을 위한 수출산업 전진기지로 조성되었다. 총면적 3.726㎢, 총 6개의 단지로 되어 있다. 제1단지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일원으로 한국수출산업공단 본부가 단지 내에 있다. 제2단지는 구로구 가리봉동 일원에 제1단지와 대로 경계에 있다. 이들 단지들은 원자재와 부자재의 반입 및 수출화물의 선적,..
성균관 고려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명칭을 성균관으로 바꿔 조선 시대에 이어졌다. 태학·반궁·현관으로도 불렸다. 성균관은 지배이념을 보급하여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를 양성함으로써 왕조체제의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성균관 입학자격은 소과 급제자인 생원·진사에 한했으나 결원이 있을 경우 사학 생도나 문음자제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교과과정은 경사의 강의와 과문의 제술로 이루어졌으며, 사서오경은 주자의 주석을 중심으로 하여 가르쳤다. 학생들의 관내 생활은 유교적 의례에 따랐으며 대부분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된 후 성균관에 경학과가 신설되어 역사·지리·세계사·세계지리·수학 등을 교육하였으나 한일합병에 의해 성균관의 교육은 중단되었고, 명칭도 경학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원래의 ..
혜화동에서 최순우 옛집을 찾아 가는 길의 풍경들 최순우 옛집 최순우 옛집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고 알린 혜곡 최순우(미술사학자,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1916~1984)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하실 때까지 사시던 집이다. 1930년대 근대 한옥인 기념관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보전된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가 집필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교본이 되고 있다. 이 역시 최순우 옛집에서 썼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혜화동 옛 시장공관은 1940년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광복을 맞이한 후, 1959년부터 20년간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됐으며, 1980년부터 2013년까지 역대 서울시장(18대 박영수 시장~35대 박원순 시장)이 거주했던 공관이다. 원래 공관건물은 한양도성의 유산 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으나 2014년 부지 발굴 결과 성벽의 뒷채움석 범위가 6.4m로 건물이 한양도성에 구조적으로 직접적인 위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산구역 안에 있더라도 건물과 장소의 역사성을 감안하여 철거하기 보다는 리모델링하여 활용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됐고, 2년여 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한양도성과 역대 거주자 관련 전시관, 순성안내 및 주민 쉼터로 재탄생되었다. ..
중명전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King's Library)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I. Sabatin)이 하였다.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특히,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
이화여자고등학교 1886년 5월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M. F. 스크랜턴이 설립했고, 1887년 고종황제가 '이화학당'이란 교명을 하사했다. 1904년 중등과(4년제)를 설치했고, 1908년 보통과와 고등과를 설치했다. 1910년 대학과를 신설했고, 1918년 고등과와 보통과가 이화학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보통학교로 개교했다. 1938년 보통학교를 폐지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이화고등여학교로 바꾸었다. 1946년 이화여자중학교(6년제)로 학제를 바꾸고 1950년 6월 이화여자중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편했다. 이후 1971년 중학교를 폐지하고 고등학교만이 남게 되었다. 1986년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고, 1992년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심슨기념관..
국립기상박물관 우리 선조들은 1441년 세계 최초로 표준화된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고, 350여 개소에 달하는 전국적인 기상관측망을 구축하여 관측결과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하는 등 전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한 많은 기상유물과 기상과학문화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고 싰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에 600여대의 지상관측장비가 설치되어 기압, 기온, 바람, 강수 등을 자동으로 관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기상위성, 해양기상부이, 기상레이더, 레윈존데 등의 관측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측한 기상자료를 전 세계와 공유하고, 슈퍼컴퓨터를 활용하여 수치예측 자료를 생산하며, 전국 예보관들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교환하여 일기예보를 생산하고 있다. 국립기상박물관은 국보로 지정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국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