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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기상박물관 본문
국립기상박물관
우리 선조들은 1441년 세계 최초로 표준화된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고, 350여 개소에 달하는 전국적인 기상관측망을 구축하여 관측결과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하는 등 전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한 많은 기상유물과 기상과학문화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고 싰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에 600여대의 지상관측장비가 설치되어 기압, 기온, 바람, 강수 등을 자동으로 관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기상위성, 해양기상부이, 기상레이더, 레윈존데 등의 관측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측한 기상자료를 전 세계와 공유하고, 슈퍼컴퓨터를 활용하여 수치예측 자료를 생산하며, 전국 예보관들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교환하여 일기예보를 생산하고 있다.
국립기상박물관은 국보로 지정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국보 329호)와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국보 330호)가 전시되고 있는 등 우리의 우수한 기상과학문화를 보존하고 가치를 재해석하여 기상문화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홍난파 가옥
홍파동 가옥은 1930년에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로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인수하여 살던 곳이다. ′봉선화′, ′고향의 봄′ 등을 작곡한 홍난파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이 주택은 1930년대 서양식 주택 특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의 대표곡들이 작곡된 산실이므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될 가치가 있다.
홍난파
1925년 한국 최초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으며 국내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했다. 홍성유·이영세 등과 난파 트리오라는 한국 최초의 바이올린 3중주단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1910년 황성기독교청년회 중학부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바이올린을 구입하여 음악수업을 했다. 1918년 일본에 유학하여 우에노 음악학교에 입학했다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잠시 귀국했다. 귀국 후 매일신문사에서 기자생활도 했으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1920년 4월 바이올린곡으로 작곡한 〈애수〉라는 곡의 악보를 그의 단편소설집 〈처녀혼〉의 끝에 실었는데, 1925년 김형준에게 노랫말을 부탁하여 지은 노래가 〈봉선화〉이다.
홍난파 선생은 일제강점기 친일행적으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