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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딜쿠샤(DILKUSHA)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의 이름이다. 테일러 부부는 192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4년에 딜쿠샤를 완공하였으며 1926년에는 화재가 발생해 1930년에 재건되었다. 1942년 일제가 테일러 부부를 추방한 후 딜쿠샤는 동생 윌리엄 W. 테일러가 잠시 관리하였으며, 이후 1959년에 자유당 조경규 의원이 딜쿠샤를 매입하였으나 1963년에 조경규 의원의 재산이 국가로 넘어가면서 딜쿠샤도 국가 소유가 되었다. 그 후로 오랜 기간 방치되어 본모습을 잃게 되었으며 2005년에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가 앨버트의 아들인 브루스 T. 테일러의 의뢰를 받아 딜쿠샤를 찾아내었다. 2006년 브루스는 마침내 66년 만에..
홍난파 가옥작곡가 홍난파의 자취가 서린 곳이라는 장소적 의미에 더하여, 1930년 이래 계단과 경사지를 사용한 서양풍 주택의 공간 활용이 그 이후에 지어지는 도시 단독주택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4년 9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독일인 선교사가 거처한 다음에 세 사람의 한국인 소유자를 거쳐서, 1936년에 난파(蘭坡) 홍영후의 소유가 되었다. 홍난파는 1918년부터 1년 미만으로 일본의 도쿄[東京]에 유학한 적이 있었고, 1931년부터 2년간 미국의 시카고에 유학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외국 생활의 경험이 홍난파가 이 집을 구매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홍난파는 1934년에 소프라노 이대형과 재혼하였기에, 홍난파 부부는 193..
이회영 기념관이 집은 서울에 들어온 서양인들이 서대문 일대에서 홍파동 사직동 행촌동 언덕을 따라 지은 20세기 초기 양식 건물 중 하나다. 창이 여럿 달린 이층집을 건축한 건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 들이었다. 이들은 배화학당을 세웠다. 지금 배화대학 자리는 원래 이항복 집터였다. 이를 필운대라고 하는데 이항복이 새겼다는 각자가 바위에 굵게 박혀 있다.우당 이회영 선생은 경주 이씨 백사공파다. 백사공이란 바로 이항복 선생을 말한다. 이회영은 항일무장독립투쟁 기지를 건설코자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백사 할아버지께서 임진왜란을 맞아 왜인들과 싸웠듯 우리 가문은 그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여러 가솔들 앞에서 말했다. 남산에서 자리를 옮겨 온 이회영기념관은 이회영 가문으로 보자면 할아버지 영역으로 돌아온 셈이다.이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