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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 본문
강경근대문화거리
강경은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해상과 육상의 교통요지로 조선 3대 시장의 명성을 누렸다. 번화했던 강경에 수많은 근대역사문화의 보고가 남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강경에는 총 3개의 근대역사문화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도로와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문화유산들이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어 가뿐한 마음으로 산책하며 그 시절 거리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여행의 시작점인 등록문화재 제324호 강경역사관은 르네상스풍의 단층 건물로 서양 고전 건축 중 테라스 스타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은행과 도서관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현재는 강경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까이에 구 연수당 건재 한약방, 교장 관사, 노동조합, 한일은행, 화교학교, 천주교 강경성당 등 역사문화유적과 기독교 성지순례지들이 자리하 고 있으며 강경을 대표하는 젓갈골목도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구 연수당 건재약방
지상2층 규모의 한식구조물로 1923년 에 건축되었다.
지붕은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대지 면적306,9㎡에 건축면적 46.2㎡, 연면적 92.4㎡규모로 지어졌다. 지붕내부의 상량문을 통해 1923년에 준공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 건물은 강경의 하시장을 중심으로 했던 번성시기에 시장 중심에 위치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한식구조에 상가의 기능을 더해 근대기 한옥의 변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면은 4칸으로 나누고, 측면은 비늘 판벽을 댄 ‘ㄱ’자형 건물로 5량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점포로 사용하기 위하여 미서기 문으로 처리하였고, 2층은 각 칸별로 미서기 창을 두었다.
구조는 한식이지만 1층 차양지붕, 지붕 장식재, 변화된 툇마루 등에서 일본 건축의 분위기를 띠는 특이한 건축물이다.
강경은 1924년 10월, 전국에서 최초로 신사 참배를 거부해 강경교회 주일교사와 주일학교 학생 57명, 일반학생 5명 등이 면직과 퇴학을 당한 항일의 고장이다.
구 강경노동조합
1920년대 당시 내륙지방으로서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규모나 세력은 대단하였다. 강경노동조합은 자체단일조직으로 형성되어 오다가 1953년 산업별로 분류되어 전국 부두 노동조합 강경지부 연맹체제로 바뀌었고 현재 강경연락소에 이르고 있는데 본 건물은 1925년에 신축되었다.
건축당시 한식구조의 2층건물로 지어졌던 건물이 현재는 1층만 남아있다. 준공당시 1층은 전체를 개방하여 사무공간으로 사용되었고 2층은 2개의 방으로 구성되었으며 계단은 현관으로 들어서서 왼쪽 벽면에 붙어 직선계단으로 처리하였다. 전체규모는 본래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현관은 정면 2칸의 위치에 한칸을 돌출시켜 포치를 만들고, 캐노피를 두어 정면성을 강조하였다.
강경역 앞 해바라기식당에서 점심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