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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성지성당 본문
강경 성지성당 가는 길
어디서든 젓갈 판매장이....
강경 성지성당
강경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첫 사목성지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해 10월 12일 저녁 8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일행과 함께 금강을 거슬러 강경 황산동네에 내렸다. 구순오 교우의 집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그토록 바라던 고국에서의 첫 미사 등 성무활동과 복음전파를 시작하였다. “마침내 여러 날이 걸려 강경이라는 항구에 도착하였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교우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서울 1845.11.20. 김대건 신부 열여덟 번째 서한 중 일부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846년 6월 5일 연평도 부근 순위도에서 체포되었고, 그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이렇게 김대건 신부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1883년 당시 충청도 지역을 관장하던 두세 신부(Doucet, 정가미)에 의해 강경공소가 설립됨으로써 본격적인 발아를 시작한다. 1897년 강경지역에 화산본당(현 나바위성당)이 설립되었고, 1899년 강경포 교안사건을 겪으면서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1921년 논산본당이 설립되었고, 1946년 8월 현재의 강경본당이 분리 설립되기에 이르른다.
1946년 8월 논산 부창동 성당에서 분리 신설된 강경 성당건물은 1961년 2월, 보드뱅 신부의 설계와 감독으로 완공되었다. 특이한 구조 방식인 첨두형 아치보로 내부를 구성하는 등 현대적 처리가 돋보이는 성당 건축물이다. 1988년 조성옥 신부가 성당내부 개축을 하였지만,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보존·활용 여건이 양호하며 아치 형식의 구조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공간을 만드는 등 건축적·종교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2015년 등록문화재 650호로 지정되었다.
김대건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성직자로서의 서품을 받고 이후 조선으로 건너온 뒤 목회 활동을 하다 이듬해인 1846년 당국에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효수당했다.
증조부와 아버지 역시 천주교 박해로 3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25년 로마 교황 비오 11세는 김대건 신부를 복자로 선포했고,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증됐다.
새로 건립된 천주당 건물. 우리의 전통 한옥을 닮은 듯한 아담한 크기의 성당으로, 김대건 신부와 강경이 맺은 인연이 전시되어 있다.
성지성당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경모네 젓갈백반. 1인 12,000원.
약 20여 가지의 여러 젓갈들이 조금씩 담겨져 나오는 젓갈정식. 함께 나온 청국장도 무척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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