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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성당, 정지용 생가 본문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라 어두운데, 노래방에 가서 우리가 사온 막걸리를 마셔도 되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그러면서 김치와 새우를 안주로 먹으라며 공짜로 주셨다. 도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역시 시골이라 인심이 넉넉하다.
이튿날 아침. 옥천의 명물인 올갱이 음식점에서 올갱이전과 올갱이 해장국으로 조식을 맛있게 해치웠다.
옥천역 모습
1903년 공주 본당의 신부인 파스키에(P. Pasquier)에 의해 옥천 공소가 설립되었고, 1906년 5월 20일 본당으로 승격 되었다. 이후 옥천 본당은 다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1948년 7월 본당으로 다시 승격되며 옥천 삼양리로 이전하여 새로운 성당 건물이 신축되었다.
현재 충청북도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40년대의 천주교 성당 건축물이다.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http://tour.oc.go.kr/html/tour/culture/culture_05_01.html
육영수 생가
http://tour.oc.go.kr/html/tour/tourism/tourism_01_09.html
정지영 생가로 들어가는 거리의 입구 모습.
정지용 생가가 위치한 곳은 옥천의 구읍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기로 되었으나, 지역 유지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로 인해 옥천군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며 조용한 시골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근대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현재는 지역 명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굴곡 많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같이 시인 정지용도 우여곡절이 많은 인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시인이라는 누명을 받았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월북시인으로 인식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울퉁불퉁한 인생이었지만, 그의 시는 잊혀져 가는 고향의 정감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정지용의 시 ‘향수'를 가사로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부른 노래 ‘향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곡이기도 하다.
1996년에 생가가 복원되었고, 2005년 5월 기념관이 세워졌다.
정지용 사이버문학관
http://www.jiyong.or.kr/html/jiyong/
정지용 생가
http://tour.oc.go.kr/html/tour/tourism/tourism_01_01.html
문정리 선돌
죽향초등하교 맞은편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123cm, 너비 56cm, 두께 17cm의 규모이다. 형태는 위를 둥글게 다듬은 여성형 선돌로서, 암질은 편마암이다. 선돌 앞에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어 음력 정월 대보름 이곳에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