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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공원, 태극당 본문
동대입구역에 바로 위치한 장충단 공원과 건너편의 신라호텔 모습
이곳은 분수가 있었던 자리인데, 지금은 조그만 연못으로 꾸며져 있다.
장충단 공원
남산 기슭 아래 조성된 공원으로 광장,놀이터,분수대 등의 공원시설과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했던 이 계곡에는 조선 영조 중엽 이래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어영청의 분소인
1895년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으로 순사(殉死)한 궁내부대신
그러나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장충단은 폐사되고, 1920년대 후반 장충단 공원이라 하여, 벚꽃 수천 그루를 심고 놀이터·연못·산책로·광장·교량 등의 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상하이 사변 때 전사한 일본군의 동상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박문사 등을 건립했다.
8·15 해방 후 일제의 잔재들이 철거되고, 여러 공원 시설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장충단비
장충단비는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을 새긴 비로 1900년 11월에 세워졌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간략한 형식이다. 1910년 이후 일제가 뽑아버렸던 비신을 광복 이후 찾아서 영빈관(현 신라호텔 자리) 안에 세웠고, 1969년 지금의 자리인 수표교(水標橋,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서쪽으로 옮겼다.
수표교
수표교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세운 다리로, 원래는 청계천2가에 있었다.
수표교는 만들어질 당시는 그 곳에 마전(馬廛)이 있어서 ‘마전교’라 불리었다. 세종 23년(1441) 다리 앞 개천(청계천)에 흐르는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水標, 보물 제838호)를 세워 ‘수표교’라 부르게 되었다.
서울의 풍속 가운데 정월 대보름날 서울 사람들이 밤을 새워 즐겨 하였던 답교놀이 때는 이곳이 가장 성황을 이룬 곳 중의 하나였다.
광복 후에도 이 다리는 수표석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남아 있었으나, 1959년의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어 일시 신영동으로 이전되었다가 1965년에 장충단공원에 옮겨졌다.
지난날 수표교가 있던 곳은 수표동이라는 명칭과, 수표공원이라는 어린이공원이 있어 그 이름만 전하고 있다.
새롭게 들어선 공원 내 음식점.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역시 새롭게 꾸며진 조그만 폭포.
장충단 공원은 동국대학교와 바로 인접해 위치하고 있다.
장충체육관
1960년 3월 서울시에서 예산 900여 만원으로 기공하여 1963년 2월에 준공하였다. 총 공사비 9,200만여 원으로 3,293평의 대지 위에 우리 나라 최초로 세워진 실내체육관으로 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1인당 80달러로, 기술이 부족해 돔 천장 올리는 기술을 당시 선진국이었던 필리핀 기술자들이 거들었다고 한다. 개장기념으로 제1회 동남아여자농구대회를 개최하였다.
현재 장충체육관은 개장 50년 만에 대대적인 리모델링 중이다.
태극당
1946년 창업하여 1973년 장충동으로 이전해, 7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에서 자란 장년층 사이에서는 명성이 높은 제과점이다.
내부가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태극당의 명물인 모나카 아이스크림. 가격이 1,500원 이었던 것 같다.
카스테라의 가격은 5,000원
전통의 맛을 지닌 팥빙수. 가격은 7천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요즘의 팥빙수에 비해 단맛이 덜해 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