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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와 용추폭포 (제천) 본문
의림지
우리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힌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義臨堤)라고 표기하였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척(尺)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결(結)이나 되었다.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다. 상주의 공검지(恭儉池)나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이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 년 뒤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수축하고 다시 1457년(세조 3)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운동에 대비하여 군사를 모으면서 호서·영남·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1910년부터 5년 동안 3만여 명의 부역에 의해 보수하였던 것이 1972년의 큰 장마 때 둑이 무너지자 1973년에 다시 복구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제방과 호수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섰고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가 있으며, 이곳 특산물로는 빙어가 유명하다.
용추폭포 유리전망대
유리전망대는 용추폭포 위에 설치한 인도교로, 발아래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내려다보인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을 바라보면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가 포말과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마치 폭포 위를 산책하듯 아찔하다. 폭포는 아래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발아래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는 느낌이 색다르다.
유리전망대는 유리 덱으로 이어진 곡선 구간과 나무 덱으로 만든 직선 구간으로 나뉜다. 원래 이곳에 신월동 주민의 교통 편의를 위한 인도교가 있었는데, 2009년 이 다리가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재시공이 필요했다. 제천시는 볼거리를 추가해 새로운 개념의 다리를 설치하기로 하고 유리전망대를 기획했다. 직선 구간은 종전처럼 사용하고, 곡선 구간은 여행자에게 재미를 주는 구간으로 구성했다. 규모는 직선부 길이 24m에 폭 3m, 곡선부 길이 42m에 폭 2.4m로 그리 길지 않지만,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리전망대에서 용추폭포를 내려다본 모습
제천 용추폭포
용추폭포라는 이름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터져 죽어 만들어진 곳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일부 주민은 지금도 용추폭포를 '용터지기'라고 부른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용 울음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용폭포'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용추폭포 아래 용 모양 바위가 있었으나, 오랜 풍화작용으로 사라졌다.
용추폭포는 약 30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웅장한 폭포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경호루 뒤쪽으로 가야 한다.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폭포가 존재감을 뽐낸다. 경호루 근처에 있는 후선각 터도 전망 포인트다. 밀양군수 김봉지가 세운 누각으로, 조선 시대에 시회를 열기도 했으나 지금은 석축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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