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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 본문
고려궁지
고려 고종 19년에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가 강화로 옮겨졌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규모는 작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건물(장령전, 행궁, 만령전, 봉선전, 외규장각, 척천정, 세심재 등) 및 유수부 건물들이 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 시 프랑스군에 의해 건물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1977년 보수 정화되어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규장각
정조 6년인 1782년에 설립하였다. 즉위 직후 설립한 규장각이 왕이 쓴 글과 왕실 관련 도서를 보관하던 왕립 도서관이었다면 외규장각은 부속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외규장각이 생긴 이후에는 규장각을 내규장각이라고 부르며 둘의 성격을 구분하여 도서를 보관하였다. 외규장각에는 주로 역대 왕의 글과 글씨, 어람용 의궤 및 주요 서적, 왕실 관련 물품을 보관했다. 병인양요 이전까지 외규장각 도서는 1,007종 약 6,000권 정도였는데,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이 수천 권의 책을 불태우고 은궤, 어새(왕실 도장), 지도 등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340여 권을 약탈해갔다. 1975년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서고에 묻혀 있던 외규장각 도서는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2011년 5년 마다 임대를 갱신하는 형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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