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포 개항가도 (좌천역)

fussreise 2018. 1. 27. 12:15














정공단

임진왜란의 첫 접전지는 부산이며 부산진성을 지키던 정발장군은 첫 접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장군과 같은 충용의 장군이 열사람만 되었더라도 우리가 받았던 피해와 고통은 그 지경이 아니었을 것이라 한다.충장공 정발장군의 충령을 모신 사당이 정공단이며 좌천1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해마다 부산진성이 함락된 음력 4월 14일이면 여기에 제단을 마련하여 장군의 충용을 추모하고 있다.

정공단은 임진년부터 54년후인 1646년 2월 절도사 이광국이 국명을 받아 부산성 남문터에 세웠으며 역대 부산첨사는 해마다 음력 4월 14일 국비로 제사를 받들었으나, 갑오경장이후 국비지원은 중단되고 지방민의 정성으로 받들어 지고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동구 좌천동 768-1번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1909년에 만들어진 서양식 근대건물의 원형과 이후 증축한 부분까지 잘 보존되어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건물의 1층 외부는 석조이고 2층은 붉은 벽돌로 치장 쌓기가 되어있지만 내부는 목재로 감싼 점이 특이하다. 건물 바깥에 벽돌을 쌓은 기술이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건물 정면의 계단과 2층 난간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물이 앉은 터는 약간 언덕을 이룬 곳인데, 2층에 남향으로 베란다를 두어 건물이 만들어진 당시부산항의전경을 볼 수 있게 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부산의 근대건축물 대부분이일제에 의해 지어진 것에 비해 부산진일신여학교 건물은 호주인 선교사들이 지은 서양식 건물로서,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5월 2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부산진일신여학교는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여타 교육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으며 그 밖에 한글,역사,지리,수학,심리학,식물학 등 다양한 과목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민족과 성별에 따른 차별적 교육이 이뤄지던 일제강점기, 부산진일신여학교는 조선인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친 곳이었다.
























부산포 개항문화관

부산의 종가 동구의 역사문화 재조명과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국토수호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조선은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왜인들의 통제를 위해 1407년(태종 7년) 부산포를 개항하고, 이곳에 왜관을 설치하여 교역 및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성종 즉위년인 1469년에는 동평현 관내 인근의 가마솥처럼 생긴 산 이름을 따라 이곳의 원 지명인 ‘富山浦(부산포)’가 ’釜山浦‘로 바뀌게 된다.그리고 이곳에 첨사영(수군첨절제사영)이 들어서면서 왜구를 막는 중요한 국토 변방의 군사요지로 사용하였다.안용복 장군은 부산 동구 좌천동(현 매축지)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나라에 대한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는 엄한 가훈을 받고 자랐으며, 독도를 우리나라 고유 영토로 인식하고 이를 지켜낸 인물로서, 우리에게 영토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준 역사적 인물이다.












































증산공원

좌천동에 있는 정공단의 뒷산으로 증산이라 하는 이유는 시루(甑)와 같이 생긴 재성(倭城 )이 있으므로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이듬해(1593년) 2월 왜장 모오리테루모토등이 부산진성을 함락한 후 부산진성의 성축을 허물어 석재로 이용하여 축성(築城)한 것 1982년 동구청에서 체육공원으로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다.